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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정의 - 강상훈 展

서울시 종로구 평창36길 20 | T.02-396-8744

2017-04-12 ~ 2017-04-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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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미래를 떠도는 생채기들의 난파선

최금수 소장

 

1. 너무 현명한 오늘

“너희들은 아주 현명했다 / 하지만 너무 현명하지 않았나? / 너희들 거기 손에 달고 있는 게 근육 아니냐? / 그런 놈들 앞에선 일이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 없다. / 그렇게 똑똑한 인간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 너희들한테는 / 순간적인 애정이나 / 바보같이 왈칵하는 게 없다고나 할까 / 어쩌면 너희들은 그런 / 자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어 갔다가 / 어쩌면 다시 빠져 나왔을지도 모르지 / 어쩌면 너무 많은 애정으로 감동 받은 / 너희들의 팟저로 인해 / 하지만 그걸 어쩌면 만회할 수도 있겠지 / 아직 잔정이 / 남아 있다면. 너희들 코끝엔, 단지 자연스러운 것을 / 들이대야 하니까. / 짧고 굵게 말하지: 너희에게 권한다 / 동참하라 내 투쟁에. / 좀 비이성적여 보란 말야!”몇 해전 라삐율에 의해 남한에서 상연되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미완성 작 『팟저-단편』에서 팟저가 뭇 등장인물들에게 외친 말이다. 물론 브레히트는 다중성격의 요한 팟저를 동물적 시대감각을 지닌 이기주의자 또는 아나키스트로 묘사했다. 알다시피 그의 상황극은 대부분 전쟁과 학살의 시대에 국가와 계급 그리고 청산과 혁명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루고 있다. 물론 무자비한 살육들로 얼룩진 시대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스런 일이다. 미래에 대한 구름 잡는 설계보다는 치 떨리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맘이 우선할 것이기 때문이다.낡은 것과 새 것의 갈등은 시간의 파장에 포획된 삶에서는 늘 존재한다. 동전의 양면인 파괴와 건설. 결국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릴까가 문제인데 홀로 살 수 없고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야 하는 더운피를 지닌 인간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어떤 집단 또는 개인이 편협하게 구조화된 권력의 힘에 의해 일방적인 갈등이 조장될 때는 그 해결법을 찾기란 여간 버겁지 않다.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애틋한 감정들마저 빼앗아가는 피 말리는 일상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치고 주린 나약한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용기란 피폐한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두려움인 탓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극한에 달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방어하기엔 너무 약하다. 공격으로 전환하자’ 『팟저-단편』에 등장하는 성급한 코이너가 외친 말이다. 지난 세기 우리는 이 지겹게 암울한 공포와 막막한 두려움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