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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여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16-12-16 ~ 201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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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소녀, 모자 장식하기

 

19세기 후반 미술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대가들 가운데 ‘비극적 주제를 그리지 않은 유일한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는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예술철학으로 화려한 빛과 색채의 조합을 통해 5,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이 가운데 2000여 점이 여성을 주제로 그린 인물화였을 정도로 르누아르는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는 드물게 여성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그 중 ‘여인’이라는 단일 주제에 초점을 두고 전 세계 30여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 및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빌려온 작품 47점을 볼 수 있는 자리가 3월 26일까지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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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와 장난감, 가브리엘과 르누아르의 아들 장. ‘한 평생 여성을 찬미했던 인상주의 거장’

 

 

르누아르의 초기작에서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등장하는 주제이다. 어머니, 아내, 전문 모델, 파리의 여인, 젊은 여인, 어린 소녀 할 것 없이 르누아르는 한 평생 여성을 찬미했다. ‘여자들이 좋다’던 르누아르의 단언은 사랑이라는 말을 앞세워 여자를 밝히고 탐하던 19세기 남성들의 호색한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은 그 무엇도 의심하지 않으며, 여자들과 함께 있으면 세상은 굉장히 단순한 무언가가 된다. 

여성은 모든 것을 하나의 올바른 가치로 귀착시키며, 자신들이 하는 빨래가 독일 제국의 헌법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 여성들 곁에서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화가의 생애를 크게 둘로 나누었을 때, 전반부에는 주로 전문 모델이나 여자친구, 몽마르트의 젊은 여인들, 작업 중인 여성 노동자들을 그림의 모델로 세웠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모델이 된 여인들 가운데 르누아르 그림 특유의 풋풋한 매력을 잘 보여주는 모델은 바로 리즈 트레오다. 그녀를 그린 그림들을 보면 다양한 예술적 모티브와 사회적 신분으로 여성을 표현해내는 화가의 역량이 잘 드러난다.

 

1866년에서 1872년 사이 르누아르의 연인이었던 리즈 트레오는 25점 이상의 그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작품 ‘리즈의 초상’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발랄하고 청순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양산을 쓴 리즈’에서는 우아한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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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하는 두 여인 (우측) ▲해변가의 소녀들

 

 

‘여인은 애착을 갖고 있던 삶을 상징하는 존재’

 

르누아르는 작품마다 붓을 터치하는 방식이나 색상의 선택, 모델의 자세 등을 달리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인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이에 따라 그림 속 모델은 자연미가 넘치는가 하면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어떤 때는 정숙한 여인으로, 또 어떤 때는 교태를 부리는 여인으로 그려지며 실제 모습, 상상 속 모습, 르누아르가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르누아르는 특히 여인의 풍만함을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하면서 생기 있는 피부의 육감적인 느낌과 모델의 포즈에서 느껴지는 여성스러운 세련미, 풍성한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난색 계열의 색상을 사용했으며,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은 르누아르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색조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은 대개 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을 준다. 

호의적이고 친절한 성품의 르누아르는 삶을 사랑하는 화가였고, 여인은 그가 애착을 갖고 있던 삶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전시는 일상의 행복을 담아내기 위해 동시대를 살았던 어린아이들과 십대 소녀를 마치 천상의 얼굴처럼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한 첫 번째 테마 ‘어린아이와 소녀’를 시작으로, 두 번째 테마 ‘가족 안의 여인’에서는 화가의 부인 알린 샤리고와 유모였던 가브리엘 그리고, 뮤즈였던 데데의 모습까지 가족으로 함께했던 여인상을 한눈에 보여 준다.

 

세 번째 테마 ‘르누아르의 여인’에서는 공식적인 주문에 의한 초상화나, 주변 지인 혹은 신원미상의 여인 등의 모습을 통해 르누아르만의 독특한 붓터치로 묘사된 동시대 여인들의 형형색색으로 표현된 작품이 소개되며, 네 번째 테마 ‘누드와 목욕하는 여인’에서는 고전주의적 가르침으로부터 관능적이고 풍만한 여성 누드로 완성된 목욕하는 여인 연작을 통해 여체의 신비를 화폭으로 표현한 그의 여인상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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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내 붓과 함께 있다’

 

어머니, 아내, 여자친구, 전문 모델, 파리의 여인, 배우, 후원자,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르누아르는 여성을 그릴 때 항상 화사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사랑과 평온이 깃든 행복한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소설가 모파상은 “모든 것을 핑크빛으로 바라본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어쩌면 ‘르누아르가 미친 것’일 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저 르누아르가 갖고 있던 이 약간의 ‘긍정적인 광기’를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 같은 광기를 바탕으로 르누아르는 늘 나이나 신분, 개인적인 혹은 가족과의 친분에 관계없이 항상 밝게 빛나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름다운 여인, 몽상에 잠긴 여인, 경쾌하면서도 진지한 여인,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엄마 같은 여인, 교태를 부리는 관능적인 여인,

푸근한 자태의 여인 등 르누아르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인들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왕진오 이코노미톡 기자  wangpd@economytalk.kr

 

http://www.econotalking.kr/news/articleView.html?idxno=146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