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숙 展 Wish List
갤러리 시:작 Opening 2017. 4. 19(수) pm 6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4-3 | T.02-735-6266
2017-04-19 ~ 2017-04-25
본문
'친숙함 속에 배어나는 인생의 향기'
십육 년 간이나 붓을 놓았던 어머니가 개인전을 준비한다고 하셨을 때, ‘어머니에게 개인전을 열만큼 많은 작품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었다. 지병으로 화실을 접기 전까지 공모전 출품과 그룹전 참여 등 열심이셨던 기억은 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로 여겼을 뿐 진지한 작품활동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집안 구석구석 흩어져 있던 어머니의 작품들이 오랜 먼지를 털고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놀라움에 할말을 잃었다. 엄마가 그림 그리러 다니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던 고등학생이 저 혼자 세상 일은 다 하는 양 바쁜 직장인이 되어 제 삶에만 몰두하는 동안, 어머니는 마흔 점이 넘는 작품을 가진 어엿한 작가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쌓아 올리셨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는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이셨다. 젊은 시절 자신의 의상실을 운영했을 만큼 손재주와 감각이 탁월했던 어머니는 어린 세 딸의 옷부터 집안의 가구 하나까지 늘 아름다움을 고려해 고르고, 만들고, 배치하셨다. 제아무리 제멋대로인 곱슬머리도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 곱게 땋아 내려졌고, 허름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중고물품도 어머니가 자리를 찾아 놓으면 운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 이런 어머니가 그림에 이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나 싶다. 첫 스승이었던 최예태 화백의 꽃 작품을 보고 그 오묘한 색의 조화와 대비에 매료된 후, 어머니는 무작정 유화 강좌에 등록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정식으로 미술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타고 난 손재주 덕에 세 번의 공모전에 연이어 입선했고, 다수의 그룹전에 초청되었다.
고희전(古稀展)으로 마련된 이번 개인전에는 지난 26년간 어머니가 그림과 만나 ‘작가 서경숙’으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까지의 변화와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물의 형태와 색을 재현하는데 충실했던 초기 정물에는 첫 시작의 설렘과 흥분, 그리고 붓질 한 번에도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한참 작품활동에 열심이던 중기에는 인정받기 시작한 신진 작가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과감한 터치로 표현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시기의 풍경 작품을 좋아하는데, 교과서적이리만치 균형 잡힌 구도 내에서 자신이 강조할 부분과 생략할 부분을 명쾌히 선택해내어 작품 전체에 활기가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오랜 격조 끝에 다시 붓을 잡고 완성한 최근작들은 세월의 흐름과 작가의 연륜을 반영하듯 대상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이 속해 있는 scene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보는 이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머니의 작품은 정물, 인물, 풍경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그릇, 이름을 댈 수 있는 꽃, 가본적 있는 장소와 같은 친숙함을 준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소재들을 캔버스에 옮기며, 그 안에 자신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절망, 위로와 극복의 과정을 고스란히 흘려 넣으셨다. 아마도 이 친숙함이 매개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에도 작가 서경숙의 인생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전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